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문단 편집) == 어록 == >Etiamne si quae leges sint tyrannorum? Si triginta illi Athenis leges inponere uoluissent, et si omnes Athenienses delectarentur tyrannicis legibus, num idcirco eae leges iustae haberentur? >독재자들이 제정한 법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하다는 말인가? 아테네에서 저 유명한 30인(三十人) 독재자가[* triginta illi: BC 404년 30명이 아테네에서 전권을 장악하고 폭정을 일삼다가 트라시불로스(Thrasybulos)의 반격으로 민주정이 회복된 사건이다.] 법률을 부과하려고 한다면, 또 설령 아테네인들 전부가 독재자의 법률을 좋아한다면, 그것만으로 그 법률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째서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카이사르를 키케로가 반대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장이다. 2000년이 지난 현대에도, [[모택동|여론의 지지를 내세우며]] [[히틀러|폭정을 휘두르는]] [[블라디미르 푸틴|독재자들]]에게 모두 적용 가능하다.] >---- >키케로, 『법률론』 1.15.42 >... qui dolorem ipsum, quia dolor sit, amet, consectetur, adipisci velit, sedquia non numquam eius modi tempora incidunt, ut labore et dolore magnam aliquam quaerat voluptatem. ut enim ad minima veniam, quis nostrum exercitationem ullam corporis suscipit laboriosam, nisi ut aliquid ex ea commodi consequatur? quis aute'm vel eumiure reprehenderit, qui in ea voluptate velit esse, quam nihil molestiae consequatur, vel illum, qui dolorem eum fugiat, quovoluptas nulla pariatur? >역시 마찬가지로, 단순히 고통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통 그 자체를 사랑하거나 추구하거나 소유하려는 자는 없다. 다만 노역과 고통이 아주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상황이 때로는 발생하기 때문에 고통을 찾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모종의 이익을 얻을 수도 없는데 힘든 육체적 노력을 기꺼이 할 사람이 우리들 중에 과연 있겠는가? 하지만 귀찮은 일이 뒤따르지 않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선택한 사람, 혹은 아무런 즐거움도 생기지 않는 고통을 회피하는 사람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 >키케로, 『최고선악론』 1.32.33[* [[로렘 입숨]]에 인용된 문구이다.] >dum spiro, spero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세계 각지에서 표어로 사용하는 문구로 그리스의 시인 [[테오크리토스]]가 인용했다는 설도 있다.] >O tempora! O mores! >아 시간이여! 아 세태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